[INTERVIEW]
“어디에 살아?”
집이 곧 신분이 되는
계급 피라미드에서 벗어나기
협소주택 세로로(SERORO)를 짓고 사는
최민욱&정아영 부부 인터뷰
사진 변종석 제공
서울에 ‘내 집 마련’을 한다는 건 이제 ‘목표’에서 ‘꿈’으로, 어쩌면 ‘막연한 희망’으로 바뀌고 있다. 커피 한 잔 안 마시고, 치킨 한 마리 안 시킨 돈을 일 년간 착실하게 모아도 서울 아파트값 한 달 상승치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잠을 자지 않고 일해도, 집값은 저멀리 달아나 있다. 청년들은 멀어진 내 집 마련의 꿈을 좇느니 자신만의 새로운 주거 방법을 찾는다. 여기, 아주 새로운 방법으로 이 주택 계급 피라미드에서 비켜난 사람들이 있다. 불과 10여 평의 땅을 사서 한 층에 5평짜리 집을 5층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린 협소주택, ‘세로로(SERORO)’의 주인들이다.
세로로는 종로구 낙산공원에서 동대문으로 넘어가는 동네에 있다. 스몰러건축 소장인 최민욱 씨와 와인 강사로 활동하는 정아영 씨가 신혼집 삼아 건축했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협소한 주택’이라는 점이다. 고작 10평 대지에 건물을 올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 합치면 20평인데다 건물을 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건물은 얇고 길다. 1층은 필로티 주차장, 2층은 고양이와 함께 쉬는 거실, 3층은 주방, 4층은 침실, 5층은 옷방과 욕실이다. 각 층마다 두 벽에 창을 크게 뚫어 답답함을 없앴다. 숲과 가까운 집이라 계절을 느끼기에도 좋다.
이런 건물을 지으려면 얼마나 필요한 걸까? 건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이렇게 지어서 살 수 있을까? 좁고 높으면 불편하진 않을까? ‘세로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질문은 늘어났다. 스몰러건축의 최민욱 소장을 만나 새로운 주택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Q1. 어떻게 이런 주택을 지을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저희가 오랜 연애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결혼 후에 집을 어떻게 구할까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저희도 여느 30대 부부와 다름없이 생각했어요. 가진 돈에서 얻을 수 있는 집이 있나 고민했죠. 그런데 너무 비싸더라고요. 우리의 생활방식이 아파트의 그것과 다르기도 하고요.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출을 받아서 그걸 갚느라 고생하느니, 차라리 있는 돈에서 작은 집을 짓자고 결심했죠. 그 후에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투리땅을 모조리 뒤졌습니다.
최민욱 소장은 서울을 돌아다니며 10평 이내의 자투리땅을 찾았다. 자투리땅은 많지 않았고, 있어도 버려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좁은 대지는 주차공간 외에는 사용할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민욱 소장이 마침내 찾은 곳은 창신동에 있던 1930년대에 지어진 폐가였다. 지하철역과도 많이 멀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연이 가까웠다. 한 평(3.3m²)당 1000만 원씩 총 10평을 1억 원 주고 샀다.
Q2. 어떤 땅을 위주로 찾으셨어요?
가격이 제일 우선이었어요. 자투리땅이 싸지 않으면 협소주택을 올리는 의미가 없잖아요. 서울 안이고 전철 이용할 수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죠. 중심가가 아니라고 해도 괜찮았어요.
Q3.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점은 무엇이었나요?
저희 집이 세로로 높다보니 동선 짜는 게 첫번째였어요. 계단이 많잖아요. 많이 움직이지 않고 다녀야 하니, 각 층별로 어떤 라이프가 있는지 상상해보면서 동선을 만들어갔죠. 지금은 전혀 불편함이 없어요. 너무 만족하면서 살고 있어요. 또 단열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전에 살던 집이 너무 추웠거든요. 집 지을 때 거기에 투자를 했죠. 이제는 아주 적은 비용으로 한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요. 아주 만족스러워요.
Q4. 집이 가로로 넓은 형태에서 세로로 높아지면 삶의 어떤 점이 결정적으로 달라질까요?
계단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운동할 수 있는 거? (웃음) 층이 여러 개니 프라이버시가 더 지켜지는 것 같아요. 가로로 넓은 집에서는 누군가 거실에 있고 나는 방에 있어도 한 겹의 문 너머로 함께 있다는 감각이 있잖아요. 위아래로 있으면 그 감각이 더 멀어져요. 둘 다 고양이 같은 성격이라 필요할 때는 다른 층에서 각자 할 일을 하는 거죠. 한집에 있지만 거리감을 둘 수 있어요. 각 층별로 풍경이 다른 것도 재미있어요. (창이 넓어서 잘 보이겠어요.) 옛날에 아파트 살고 그럴 때는 계절 가고 그런것도 못 느낀 것 같아요. 지금은 시시각각 보이죠.
Q5. ‘세로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요?
욕조가 있는 욕실이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욕조에 들어가서 맥주나 와인 마시는 걸 좋아해요. 아내가 와인을 전공했거든요. 2층은 책상을 두고 서재로 썼는데 고양이를 입양하게 되면서 공간이 좀 바뀌었어요. 사무실을 외부에 얻어서 서재처럼 쓰고, 대신 서재방에 소파를 두고 고양이랑 놀 수 있게 만들었죠.
5층 건물을 올리는 데는 공사비 1억 7000만 원이 들었다. 대지 1억까지 합치면 협소주택 ‘세로로’를 가지기 위해 필요했던 총 비용은 2억 7000만 원. 가구를 채워넣으니 약 3억 원 정도가 들었다. 서울 아파트 전세도 얻기 어려운 금액이다. 그러나 건축의 ‘ㄱ자’도 모르는 일반인으로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건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설계에서 준공까지 1~2년이 걸렸다는 이 협소주택. 일반인도 지을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Q6. 협소주택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 세대가 많습니다. 일반인도 가능한 일일까요? 협소주택을 짓고 싶다면 어떤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협소주택을 짓는 건 당연히 가능합니다. 좋은 땅을 찾는 게 가장 우선이에요. 방송에 나가고 나서 문의가 많았어요. 집을 짓고 싶다는 의뢰도 자주 받았고요. 협소주택을 짓겠다고 찾아오시는 분들께는 먼저 대지를 알아보라고 말씀드리거든요? (좋은 땅이 구체적으로 뭘까요?) 땅이 비싸면 의미가 없어요. 일단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하고요. 땅을 보러 가는 분들에게는 그런 조언을 해요. 주변을 걸어다니면서 아침저녁으로 어떤 생활을 할지 그려보시라고요. 강아지를 키우시는지, 어느 루트로 산책을 할지. 그런 감각부터 길러가시면 안목이 생기지 않을까요? 또 그렇게 상상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좋은 땅을 봤을 때 좋은지 알아요. 몇 평짜리니까 얼마다, 이렇게 수치로만 땅을 구입하면 알 수 없는 것들이죠.
Q7. 전문가가 아닌데도 협소주택을 저렴한 비용으로 짓고 살 수 있을까요? 설계비를 생각하면 많이 비싸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는 총 3억 원에 지었어요. 가구를 다 포함한 금액인데요. 일반인들도 가구를 넣는 걸 생각하지 않으면 총 3억 원에 지을 수 있어요. 설계비가 들어가서 3억이 되는 거죠. 그렇지만 땅값은 서로 다르잖아요. 괜찮은 땅을 저렴하게 사는 데 방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좋은 땅을 잘 찾는 거요. 저도 협소주택 짓고 싶다는 분들을 도와드리기도 해요. 지금도 15평짜리 땅을 사서 4층짜리 집을 짓고 있는 30대 중반의 여자분이 계세요.
어떤 곳에 사는지는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몽골의 광활한 초원을 보며 자란 아이와, 테헤란로의 빼곡한 빌딩숲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을까? 세로로 긴 집에서 살면 어떨까? 아니, 이런 집을 짓는 사람은 어떤 사고를 하는 사람인 걸까?
Q8. 어떤 집에 사는지는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철학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로로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을까요?
“남과 달라도 살 수 있다.” 집을 지은 후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원래도 남 눈치 안 보고 살기는 했지만요. 저희 집이 한 층에 다섯 평 정도로 좀 작거든요. 우리가 편하면 되지 크기가 무슨 상관이냐 싶었죠. 작지만 그 공간에서도 지낼 만해요. 한 층만한 집에서도 둘이 지낸 적도 있었어요. 잠시 고시원에 있었던 적도 있고요. 일본에서 지낼 때도 참 작은 집에 있었죠. 꼭 남하고 같게, 남들이 사는 집을 갖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에서 해본 도전이었습니다.
Q9. 이곳에서 평생 사실 계획인가요? 아니면 팔 생각도 있으실까요?
알 수 없어요. 평생 살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요. 집을 너무 무겁게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요. 기존의 잣대로 저희 집을 보는 경우가 있거든요. 저희 기사가 나간 후에 댓글로 이렇게들 말하시더라고요. “애를 낳으면 어떻게 살 거냐?” “나이 들면 어떻게 하냐?” “나중에 팔려고 해도 안 팔릴 거다.” 저희는 그런 생각 안 해요. 나이 들어서 불편하면 나가면 되죠. 누구라도 한 분만 이 집을 원하면 팔 수 있는 거니까요. 집은 마치 맞춤 정장 같아요. 제 체형이 변하거나 삶이 변하면 다른 옷을 입으면 되는 거니까요.
Q10. 집을 지으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요?
자기가 어디서 살고 싶은지, 어떤 건축물이 좋을지. 이런 걸 고민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우리는 주어진 대로 살잖아요. 주거의 다양성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케아에서 고르는 색상이나 벽지의 무늬 차원이 아니에요. 오감으로 느껴야 해요. 요즘은 그런 고민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저도 집을 지으면서 그런 고민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집을 직접 지으니 아내랑 같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잖아요. 집의 동선도 그려보고요. 저와 아내는 연애를 오래 했거든요. 그런데도 서로의 생활에 대해서는 공유된 점이 없었던 거죠. 논쟁도 많았어요. (어떤 거요?) 욕조가 필요하다 아니다를 두고도 그랬죠. 욕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아내가 이겼고, 해놓고 보니 제가 더 많이 쓰고 있어요. 저 스스로도 좋은지 아닌지 안써보니까 몰랐던 거죠. 저는 욕조가 그냥 샤워할 때 필요한 건 줄 알았는데, 지금은 욕조 옆에 창을 내두고 혼자 맥주 마시며 반신욕도 즐겨요.
Q11. 사람들은 아파트가 좋아서 산다기보다, 값이 오를 확률이 높고 되팔기 쉬워서 사는 것 같아요. 요즘 한국인들에게 ‘집’이란 뭘 의미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집이 하나의 신분이죠. 어느 집에 사느냐, 주소가 어디냐, 아파트 브랜드가 어디냐가 그 사람을 명확하게 규정짓고 정의내리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그 레이스에 서 있죠.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요. 더 높이 올라가는 방법 외에는 없어요. 다른 주거 대안이 없으니까요. 모든 주거 형태가 사람을 줄 세우는 피라미드 안에 수용이 되니까요. 낙후된 빌라에 사느냐, 아파트에 사느냐로요. 그 레이스 안에서 줄을 설 자신이 없어서 대안이나 묘책이 필요했어요. (피라미드의 밖에 있는 방법은 협소주택 건축 외에 뭐가 있을까요?) 공유주택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봐요. 청년들이 피라미드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어요.
Q12. 우리나라 주거 문제가 복잡한데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구가 줄고 있잖아요, 20년만 지나도 주택 문제의 초점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대학교에 출강도 나가는데, 대학교도 학생들이 예전보다 적어요. 교수님들도 학생들이 줄고 있으니까 학생 모집에 열심이시거든요, 옛날에는 안 그랬잖아요. 주객이 바뀌었어요. 지금 20대가 본격적으로 주거 시장에 들어오면 그땐 좀 달라질 것 같아요. 그들도 건물도 20년 나이가 먹는 거잖아요. 낡은 집이 될 텐데 그럼 건축도 달라지겠죠? 요즘 정부가 아파트값을 잡으려고 정책을 쓰고 있잖아요. 미래에는 집 값이 너무 폭락해서 그걸 연착륙시키려고 하지 않을까요? (서울은 다르지 않을까요? 인구의 도심집중현상이 심각한데요.) 일본에는 빈집이 너무 많아서 수십 년 전부터 도시 계획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거든요. 건물을 잘 짓고 대량 공급을 하는 시스템이었는데요. 이제는 어떻게 잘 비울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도시에 사는 사람이 줄고 있어요. 이제는 어떻게 균형을 맞춰서 공간을 비울지가 중요해요. 그 비운 공간에 공원을 만든다든가요. 점점 집을 소유한다는 게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있는 만큼 고쳐 살면 되죠. 그런 게 좋지 않을까요?
Q13. 딴짓13호 주제는 ‘지금, 어떤 집에서 살고 있나요?’입니다. 딴짓 독자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집을 꼭 부동산으로만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집에도 공간에도 자기 취향을 반영해서 살면 좋겠습니다. 인테리어만 보지 말고요. 어떤 방향, 어떤 풍경, 어떤 분위기에서 사는 게 좋을까. 관심을 가지고 집을 보면 언젠가 공간에 대한 취향이 생길 겁니다. 그러면 기회가 될 때 이런 집을 짓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요?
딴짓매거진 시즌 2/2호(13호) 발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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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살아?”
집이 곧 신분이 되는
계급 피라미드에서 벗어나기
협소주택 세로로(SERORO)를 짓고 사는
최민욱&정아영 부부 인터뷰
사진 변종석 제공
서울에 ‘내 집 마련’을 한다는 건 이제 ‘목표’에서 ‘꿈’으로, 어쩌면 ‘막연한 희망’으로 바뀌고 있다. 커피 한 잔 안 마시고, 치킨 한 마리 안 시킨 돈을 일 년간 착실하게 모아도 서울 아파트값 한 달 상승치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잠을 자지 않고 일해도, 집값은 저멀리 달아나 있다. 청년들은 멀어진 내 집 마련의 꿈을 좇느니 자신만의 새로운 주거 방법을 찾는다. 여기, 아주 새로운 방법으로 이 주택 계급 피라미드에서 비켜난 사람들이 있다. 불과 10여 평의 땅을 사서 한 층에 5평짜리 집을 5층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린 협소주택, ‘세로로(SERORO)’의 주인들이다.
세로로는 종로구 낙산공원에서 동대문으로 넘어가는 동네에 있다. 스몰러건축 소장인 최민욱 씨와 와인 강사로 활동하는 정아영 씨가 신혼집 삼아 건축했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협소한 주택’이라는 점이다. 고작 10평 대지에 건물을 올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 합치면 20평인데다 건물을 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건물은 얇고 길다. 1층은 필로티 주차장, 2층은 고양이와 함께 쉬는 거실, 3층은 주방, 4층은 침실, 5층은 옷방과 욕실이다. 각 층마다 두 벽에 창을 크게 뚫어 답답함을 없앴다. 숲과 가까운 집이라 계절을 느끼기에도 좋다.
이런 건물을 지으려면 얼마나 필요한 걸까? 건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이렇게 지어서 살 수 있을까? 좁고 높으면 불편하진 않을까? ‘세로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질문은 늘어났다. 스몰러건축의 최민욱 소장을 만나 새로운 주택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Q1. 어떻게 이런 주택을 지을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저희가 오랜 연애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결혼 후에 집을 어떻게 구할까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저희도 여느 30대 부부와 다름없이 생각했어요. 가진 돈에서 얻을 수 있는 집이 있나 고민했죠. 그런데 너무 비싸더라고요. 우리의 생활방식이 아파트의 그것과 다르기도 하고요.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출을 받아서 그걸 갚느라 고생하느니, 차라리 있는 돈에서 작은 집을 짓자고 결심했죠. 그 후에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투리땅을 모조리 뒤졌습니다.
최민욱 소장은 서울을 돌아다니며 10평 이내의 자투리땅을 찾았다. 자투리땅은 많지 않았고, 있어도 버려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좁은 대지는 주차공간 외에는 사용할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민욱 소장이 마침내 찾은 곳은 창신동에 있던 1930년대에 지어진 폐가였다. 지하철역과도 많이 멀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연이 가까웠다. 한 평(3.3m²)당 1000만 원씩 총 10평을 1억 원 주고 샀다.
Q2. 어떤 땅을 위주로 찾으셨어요?
가격이 제일 우선이었어요. 자투리땅이 싸지 않으면 협소주택을 올리는 의미가 없잖아요. 서울 안이고 전철 이용할 수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죠. 중심가가 아니라고 해도 괜찮았어요.
Q3.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점은 무엇이었나요?
저희 집이 세로로 높다보니 동선 짜는 게 첫번째였어요. 계단이 많잖아요. 많이 움직이지 않고 다녀야 하니, 각 층별로 어떤 라이프가 있는지 상상해보면서 동선을 만들어갔죠. 지금은 전혀 불편함이 없어요. 너무 만족하면서 살고 있어요. 또 단열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전에 살던 집이 너무 추웠거든요. 집 지을 때 거기에 투자를 했죠. 이제는 아주 적은 비용으로 한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요. 아주 만족스러워요.
Q4. 집이 가로로 넓은 형태에서 세로로 높아지면 삶의 어떤 점이 결정적으로 달라질까요?
계단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운동할 수 있는 거? (웃음) 층이 여러 개니 프라이버시가 더 지켜지는 것 같아요. 가로로 넓은 집에서는 누군가 거실에 있고 나는 방에 있어도 한 겹의 문 너머로 함께 있다는 감각이 있잖아요. 위아래로 있으면 그 감각이 더 멀어져요. 둘 다 고양이 같은 성격이라 필요할 때는 다른 층에서 각자 할 일을 하는 거죠. 한집에 있지만 거리감을 둘 수 있어요. 각 층별로 풍경이 다른 것도 재미있어요. (창이 넓어서 잘 보이겠어요.) 옛날에 아파트 살고 그럴 때는 계절 가고 그런것도 못 느낀 것 같아요. 지금은 시시각각 보이죠.
Q5. ‘세로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요?
욕조가 있는 욕실이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욕조에 들어가서 맥주나 와인 마시는 걸 좋아해요. 아내가 와인을 전공했거든요. 2층은 책상을 두고 서재로 썼는데 고양이를 입양하게 되면서 공간이 좀 바뀌었어요. 사무실을 외부에 얻어서 서재처럼 쓰고, 대신 서재방에 소파를 두고 고양이랑 놀 수 있게 만들었죠.
5층 건물을 올리는 데는 공사비 1억 7000만 원이 들었다. 대지 1억까지 합치면 협소주택 ‘세로로’를 가지기 위해 필요했던 총 비용은 2억 7000만 원. 가구를 채워넣으니 약 3억 원 정도가 들었다. 서울 아파트 전세도 얻기 어려운 금액이다. 그러나 건축의 ‘ㄱ자’도 모르는 일반인으로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건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설계에서 준공까지 1~2년이 걸렸다는 이 협소주택. 일반인도 지을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Q6. 협소주택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 세대가 많습니다. 일반인도 가능한 일일까요? 협소주택을 짓고 싶다면 어떤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협소주택을 짓는 건 당연히 가능합니다. 좋은 땅을 찾는 게 가장 우선이에요. 방송에 나가고 나서 문의가 많았어요. 집을 짓고 싶다는 의뢰도 자주 받았고요. 협소주택을 짓겠다고 찾아오시는 분들께는 먼저 대지를 알아보라고 말씀드리거든요? (좋은 땅이 구체적으로 뭘까요?) 땅이 비싸면 의미가 없어요. 일단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하고요. 땅을 보러 가는 분들에게는 그런 조언을 해요. 주변을 걸어다니면서 아침저녁으로 어떤 생활을 할지 그려보시라고요. 강아지를 키우시는지, 어느 루트로 산책을 할지. 그런 감각부터 길러가시면 안목이 생기지 않을까요? 또 그렇게 상상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좋은 땅을 봤을 때 좋은지 알아요. 몇 평짜리니까 얼마다, 이렇게 수치로만 땅을 구입하면 알 수 없는 것들이죠.
Q7. 전문가가 아닌데도 협소주택을 저렴한 비용으로 짓고 살 수 있을까요? 설계비를 생각하면 많이 비싸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는 총 3억 원에 지었어요. 가구를 다 포함한 금액인데요. 일반인들도 가구를 넣는 걸 생각하지 않으면 총 3억 원에 지을 수 있어요. 설계비가 들어가서 3억이 되는 거죠. 그렇지만 땅값은 서로 다르잖아요. 괜찮은 땅을 저렴하게 사는 데 방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좋은 땅을 잘 찾는 거요. 저도 협소주택 짓고 싶다는 분들을 도와드리기도 해요. 지금도 15평짜리 땅을 사서 4층짜리 집을 짓고 있는 30대 중반의 여자분이 계세요.
어떤 곳에 사는지는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몽골의 광활한 초원을 보며 자란 아이와, 테헤란로의 빼곡한 빌딩숲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을까? 세로로 긴 집에서 살면 어떨까? 아니, 이런 집을 짓는 사람은 어떤 사고를 하는 사람인 걸까?
Q8. 어떤 집에 사는지는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철학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로로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을까요?
“남과 달라도 살 수 있다.” 집을 지은 후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원래도 남 눈치 안 보고 살기는 했지만요. 저희 집이 한 층에 다섯 평 정도로 좀 작거든요. 우리가 편하면 되지 크기가 무슨 상관이냐 싶었죠. 작지만 그 공간에서도 지낼 만해요. 한 층만한 집에서도 둘이 지낸 적도 있었어요. 잠시 고시원에 있었던 적도 있고요. 일본에서 지낼 때도 참 작은 집에 있었죠. 꼭 남하고 같게, 남들이 사는 집을 갖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에서 해본 도전이었습니다.
Q9. 이곳에서 평생 사실 계획인가요? 아니면 팔 생각도 있으실까요?
알 수 없어요. 평생 살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요. 집을 너무 무겁게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요. 기존의 잣대로 저희 집을 보는 경우가 있거든요. 저희 기사가 나간 후에 댓글로 이렇게들 말하시더라고요. “애를 낳으면 어떻게 살 거냐?” “나이 들면 어떻게 하냐?” “나중에 팔려고 해도 안 팔릴 거다.” 저희는 그런 생각 안 해요. 나이 들어서 불편하면 나가면 되죠. 누구라도 한 분만 이 집을 원하면 팔 수 있는 거니까요. 집은 마치 맞춤 정장 같아요. 제 체형이 변하거나 삶이 변하면 다른 옷을 입으면 되는 거니까요.
Q10. 집을 지으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요?
자기가 어디서 살고 싶은지, 어떤 건축물이 좋을지. 이런 걸 고민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우리는 주어진 대로 살잖아요. 주거의 다양성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케아에서 고르는 색상이나 벽지의 무늬 차원이 아니에요. 오감으로 느껴야 해요. 요즘은 그런 고민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저도 집을 지으면서 그런 고민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집을 직접 지으니 아내랑 같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잖아요. 집의 동선도 그려보고요. 저와 아내는 연애를 오래 했거든요. 그런데도 서로의 생활에 대해서는 공유된 점이 없었던 거죠. 논쟁도 많았어요. (어떤 거요?) 욕조가 필요하다 아니다를 두고도 그랬죠. 욕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아내가 이겼고, 해놓고 보니 제가 더 많이 쓰고 있어요. 저 스스로도 좋은지 아닌지 안써보니까 몰랐던 거죠. 저는 욕조가 그냥 샤워할 때 필요한 건 줄 알았는데, 지금은 욕조 옆에 창을 내두고 혼자 맥주 마시며 반신욕도 즐겨요.
Q11. 사람들은 아파트가 좋아서 산다기보다, 값이 오를 확률이 높고 되팔기 쉬워서 사는 것 같아요. 요즘 한국인들에게 ‘집’이란 뭘 의미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집이 하나의 신분이죠. 어느 집에 사느냐, 주소가 어디냐, 아파트 브랜드가 어디냐가 그 사람을 명확하게 규정짓고 정의내리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그 레이스에 서 있죠.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요. 더 높이 올라가는 방법 외에는 없어요. 다른 주거 대안이 없으니까요. 모든 주거 형태가 사람을 줄 세우는 피라미드 안에 수용이 되니까요. 낙후된 빌라에 사느냐, 아파트에 사느냐로요. 그 레이스 안에서 줄을 설 자신이 없어서 대안이나 묘책이 필요했어요. (피라미드의 밖에 있는 방법은 협소주택 건축 외에 뭐가 있을까요?) 공유주택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봐요. 청년들이 피라미드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어요.
Q12. 우리나라 주거 문제가 복잡한데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구가 줄고 있잖아요, 20년만 지나도 주택 문제의 초점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대학교에 출강도 나가는데, 대학교도 학생들이 예전보다 적어요. 교수님들도 학생들이 줄고 있으니까 학생 모집에 열심이시거든요, 옛날에는 안 그랬잖아요. 주객이 바뀌었어요. 지금 20대가 본격적으로 주거 시장에 들어오면 그땐 좀 달라질 것 같아요. 그들도 건물도 20년 나이가 먹는 거잖아요. 낡은 집이 될 텐데 그럼 건축도 달라지겠죠? 요즘 정부가 아파트값을 잡으려고 정책을 쓰고 있잖아요. 미래에는 집 값이 너무 폭락해서 그걸 연착륙시키려고 하지 않을까요? (서울은 다르지 않을까요? 인구의 도심집중현상이 심각한데요.) 일본에는 빈집이 너무 많아서 수십 년 전부터 도시 계획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거든요. 건물을 잘 짓고 대량 공급을 하는 시스템이었는데요. 이제는 어떻게 잘 비울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도시에 사는 사람이 줄고 있어요. 이제는 어떻게 균형을 맞춰서 공간을 비울지가 중요해요. 그 비운 공간에 공원을 만든다든가요. 점점 집을 소유한다는 게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있는 만큼 고쳐 살면 되죠. 그런 게 좋지 않을까요?
Q13. 딴짓13호 주제는 ‘지금, 어떤 집에서 살고 있나요?’입니다. 딴짓 독자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집을 꼭 부동산으로만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집에도 공간에도 자기 취향을 반영해서 살면 좋겠습니다. 인테리어만 보지 말고요. 어떤 방향, 어떤 풍경, 어떤 분위기에서 사는 게 좋을까. 관심을 가지고 집을 보면 언젠가 공간에 대한 취향이 생길 겁니다. 그러면 기회가 될 때 이런 집을 짓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요?
딴짓매거진 시즌 2/2호(13호) 발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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