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작고 귀엽고 비싼 내 집 마련기
글 우상욱
\ 변방으로 갈 수 없어
“여보, 이거 좀 봐요!”
어느 날 메리다(=아내)가 따지듯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 필시 내가 무언가 잘못했다거나 일이 잘못됐다고 예감했다. 메리다가 내게 살펴보라는 건 대형 포털사이트의 부동산 중개 페이지였고, 당시 우리가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의 매매가 그래프가 천장을 뚫고 있었다. 집 가격은 무리하면 살 수 있는 수준에서 무리해도 살 수 없는 가격으로 터무니없이 올라 있었다.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몇 년은 걸리는 금액이 일 년도 되지 않아 오르는 것은 공포에 가까웠고,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나이브한 생각은 쉽게 힘을 잃었다. 더 크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동력은 없었지만 밀려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은 게으른 사람도 결심하게 만들었다.
“안 되겠다. 우리도 집 사자! 당장 사자!”
신혼집을 구할 때부터 집을 샀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던 메리다는 기세가 등등해졌다. 그때 샀으면 얼마나 좋았느냐, 큰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둥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내고 곧바로 부동산 앱과 카페에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열정이었다. 내 집 마련에 대한 열망일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일지 알 수 없었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조금은 기가 질리기도 했다.
\ 우리의 예산은 작고 귀여운 관계로
우선 우리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야 했기에 더없이 솔직하기로 약속하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내집을 마련하는 것은 영혼을 끌어모아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우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카메라라든가 여행이라든가 하는 명목으로 몰래 모으고 있던 비자금(이라고 하기엔 쌈짓돈에 가까운 돈)을 순순히 내어놓았다. 저축한 돈과 양가의 도움으로 마련한 전세자금에 온갖 비상금까지 더했지만 그럼에도 우리 예산은 지나치게 작고 귀여웠다. 아파트 화장실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자금을 마련한 듯했다. 대개 그렇듯 남은 방법은 은행의 도움을 받는 것뿐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구원자가 되어줄 은행에 들러 도움을 얻기로 했다. 한적한 대출 창구 번호표를 뽑고 소파에 앉아 대출과 보험과 세금의 영역에 들어서면 비로소 어른이 된다느니 하는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순서를 기다렸다. “당신같이 작고 귀여운 자산을 가진 분께는 십 원도 대출해줄 수 없어요”라며 거절하거나, “당신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호구를 환영합니다”라며 속이려 들면 어쩌나 하는 불안들을 안고 한참을 기다린 우리는 걱정과는 달리 대단히 친절한 행원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받을 수 있으리라 추정되는 수준의 대출 규모와 이자 그리고 필요한 서류와 진행되는 절차 등을 상세히 알게 됐다. 주택을 담보로 목돈을 빌리고 30년 동안 다달이 일부의 원금과 만만치 않은 이자를 내야 한다는 사실은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빨리는 일이었으나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 사는 것 vs. 사는 곳
끌어모은 영혼의 값어치를 알게 된 우리는 어디에서 살지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가치에 가중치를 두고 고민하기로 했는데, 결국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살 것인가, 살기 위해 집을 살 것인가로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집은 사는 곳이며 이미 우리가 살았던 전셋집도 충분히 작고 낡았는데, 이보다 더 작고 낡은 집으로 가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나와는 달리, 메리다는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은 아이가 생기고 나이가 들어서 누리면 된다며 젊을 때 작고 낡은 집에서 고생하자는 주의였다. 흔히 ‘몸테크’라고 하는 것을 시작할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싸움은 제법 첨예한 듯 보였으나, 전셋값 폭등 사태로 명분을 잃은 내 요구는 산뜻하게 묵살되었다. 불퉁해진 나는 많이 오를 리가 없다며 집값이 얼마 이상 오르면 내가 당신에게 절을 하겠노라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답사를 다니기 시작한 우리가 만난 집주인들은 어딘가 기세등등해 보였다. ‘내 집은 너 아니라도 살 사람이 줄 섰다’는 목 좋은 곳에 집을 가진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기운을 풍기면서 조금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비치기도 했다. 어떤 집은 상태가 좋으면 해가 들지 않았고, 또 어떤 집은 리모델링이 되어 있어 깨끗했지만 층수가 낮아 아쉽기도 했다. 모든 조건이 마음에 들어서 계약하려고 들면 들어오고 나가는 날짜가 맞지 않아 불발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 살펴본 작고 낡은 집 중에서도 옥석은 있었고 숱한 어려움 끝에 연이 닿은 내 집을 마침내 찾게 되었다. 35년이 넘은 아파트였지만 잘 관리되어 있었고, 이웃들은 조용하고 친절해 보였다. 각자의 직장까지 출퇴근하기에도 멀지 않은 곳이었고 서로의 가족들에게 인사 가기에도 나쁘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이 부분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겠지). 작고 낡은 것만 빼면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그후에 있었던 계약과 대출, 도배와 이사 등 지난한 과정이 있었지만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 나는 매일 절을 연습한다
그로부터 일 년 뒤의 소감을 묻는다면 나는 매일 절을 연습하고 있다. 그럴 리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하던 가격으로 집값이 빠르게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절을 하겠거니 했는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라서 급히 조신한 버전과 박력 있는 버전 등 다양한 절을 연습하고 있다. 사실 집값은 올랐다는데 살고 있는 형편이 더 나아진 것은 아니라 실감이 나진 않는다.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공평하게 하려고 한다. 사실 오히려 돈과 상관없는 영역에 더 크게 만족하며 살고 있다. 살고 있는 집은 여전히 좁고 낡았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아파트 단지가 매력적이고, 이웃들은 예상처럼 조용하고 친절했으며, 청소를 금세 끝낼 수 있는 것도 슬프지만 분명한 장점 중 하나다. 무엇보다 밀려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은 내 집 마련의 가장 큰 기쁨이자 슬픔이다.
딴짓매거진 시즌2/3호(14호) 발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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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작고 귀엽고 비싼 내 집 마련기
글 우상욱
\ 변방으로 갈 수 없어
“여보, 이거 좀 봐요!”
어느 날 메리다(=아내)가 따지듯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 필시 내가 무언가 잘못했다거나 일이 잘못됐다고 예감했다. 메리다가 내게 살펴보라는 건 대형 포털사이트의 부동산 중개 페이지였고, 당시 우리가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의 매매가 그래프가 천장을 뚫고 있었다. 집 가격은 무리하면 살 수 있는 수준에서 무리해도 살 수 없는 가격으로 터무니없이 올라 있었다.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몇 년은 걸리는 금액이 일 년도 되지 않아 오르는 것은 공포에 가까웠고,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나이브한 생각은 쉽게 힘을 잃었다. 더 크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동력은 없었지만 밀려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은 게으른 사람도 결심하게 만들었다.
“안 되겠다. 우리도 집 사자! 당장 사자!”
신혼집을 구할 때부터 집을 샀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던 메리다는 기세가 등등해졌다. 그때 샀으면 얼마나 좋았느냐, 큰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둥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내고 곧바로 부동산 앱과 카페에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열정이었다. 내 집 마련에 대한 열망일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일지 알 수 없었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조금은 기가 질리기도 했다.
\ 우리의 예산은 작고 귀여운 관계로
우선 우리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야 했기에 더없이 솔직하기로 약속하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내집을 마련하는 것은 영혼을 끌어모아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우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카메라라든가 여행이라든가 하는 명목으로 몰래 모으고 있던 비자금(이라고 하기엔 쌈짓돈에 가까운 돈)을 순순히 내어놓았다. 저축한 돈과 양가의 도움으로 마련한 전세자금에 온갖 비상금까지 더했지만 그럼에도 우리 예산은 지나치게 작고 귀여웠다. 아파트 화장실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자금을 마련한 듯했다. 대개 그렇듯 남은 방법은 은행의 도움을 받는 것뿐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구원자가 되어줄 은행에 들러 도움을 얻기로 했다. 한적한 대출 창구 번호표를 뽑고 소파에 앉아 대출과 보험과 세금의 영역에 들어서면 비로소 어른이 된다느니 하는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순서를 기다렸다. “당신같이 작고 귀여운 자산을 가진 분께는 십 원도 대출해줄 수 없어요”라며 거절하거나, “당신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호구를 환영합니다”라며 속이려 들면 어쩌나 하는 불안들을 안고 한참을 기다린 우리는 걱정과는 달리 대단히 친절한 행원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받을 수 있으리라 추정되는 수준의 대출 규모와 이자 그리고 필요한 서류와 진행되는 절차 등을 상세히 알게 됐다. 주택을 담보로 목돈을 빌리고 30년 동안 다달이 일부의 원금과 만만치 않은 이자를 내야 한다는 사실은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빨리는 일이었으나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 사는 것 vs. 사는 곳
끌어모은 영혼의 값어치를 알게 된 우리는 어디에서 살지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가치에 가중치를 두고 고민하기로 했는데, 결국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살 것인가, 살기 위해 집을 살 것인가로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집은 사는 곳이며 이미 우리가 살았던 전셋집도 충분히 작고 낡았는데, 이보다 더 작고 낡은 집으로 가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나와는 달리, 메리다는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은 아이가 생기고 나이가 들어서 누리면 된다며 젊을 때 작고 낡은 집에서 고생하자는 주의였다. 흔히 ‘몸테크’라고 하는 것을 시작할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싸움은 제법 첨예한 듯 보였으나, 전셋값 폭등 사태로 명분을 잃은 내 요구는 산뜻하게 묵살되었다. 불퉁해진 나는 많이 오를 리가 없다며 집값이 얼마 이상 오르면 내가 당신에게 절을 하겠노라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답사를 다니기 시작한 우리가 만난 집주인들은 어딘가 기세등등해 보였다. ‘내 집은 너 아니라도 살 사람이 줄 섰다’는 목 좋은 곳에 집을 가진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기운을 풍기면서 조금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비치기도 했다. 어떤 집은 상태가 좋으면 해가 들지 않았고, 또 어떤 집은 리모델링이 되어 있어 깨끗했지만 층수가 낮아 아쉽기도 했다. 모든 조건이 마음에 들어서 계약하려고 들면 들어오고 나가는 날짜가 맞지 않아 불발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 살펴본 작고 낡은 집 중에서도 옥석은 있었고 숱한 어려움 끝에 연이 닿은 내 집을 마침내 찾게 되었다. 35년이 넘은 아파트였지만 잘 관리되어 있었고, 이웃들은 조용하고 친절해 보였다. 각자의 직장까지 출퇴근하기에도 멀지 않은 곳이었고 서로의 가족들에게 인사 가기에도 나쁘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이 부분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겠지). 작고 낡은 것만 빼면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그후에 있었던 계약과 대출, 도배와 이사 등 지난한 과정이 있었지만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 나는 매일 절을 연습한다
그로부터 일 년 뒤의 소감을 묻는다면 나는 매일 절을 연습하고 있다. 그럴 리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하던 가격으로 집값이 빠르게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절을 하겠거니 했는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라서 급히 조신한 버전과 박력 있는 버전 등 다양한 절을 연습하고 있다. 사실 집값은 올랐다는데 살고 있는 형편이 더 나아진 것은 아니라 실감이 나진 않는다.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공평하게 하려고 한다. 사실 오히려 돈과 상관없는 영역에 더 크게 만족하며 살고 있다. 살고 있는 집은 여전히 좁고 낡았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아파트 단지가 매력적이고, 이웃들은 예상처럼 조용하고 친절했으며, 청소를 금세 끝낼 수 있는 것도 슬프지만 분명한 장점 중 하나다. 무엇보다 밀려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은 내 집 마련의 가장 큰 기쁨이자 슬픔이다.
딴짓매거진 시즌2/3호(14호) 발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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