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희생하라고만 하면 안되죠"

[INTERVIEW]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희생하라고만 하면 안 되죠”


- 에브리마인드 이서현 대표(서늘한여름밤)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은 없을까? 오래 즐겁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르게 일하는 여자들’을 찾아 이 고민을 나눠봤다.

이서현 에브리마인드 심리상담센터 대표는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에 반해 심리를 파고드는 서늘한 주제의식으로 유명한 웹툰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 썰> 작가이자 팟캐스트 ‘서늘한 마음썰’ 진행자이기도 하다. 이서현 대표의 꿈은 직원들이 만족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상담 전문가 아홉 명과 함께 심리상담센터를 운영중이다. 최근에는 팟캐스트를 함께 진행하는 봄봄, 블블과 함께 산문집 『마음의 구석』을 펴냈다. 

이서현 대표는 한 사업체의 대표라는 정체성과, 외주를 받아 일하는 여성 창작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 사이를 오가며 일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여성 창작자들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에 대응하고 서로 지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여성 창작자 모임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더 나은 길은 없는지 언제나 두리번거리고 실험해보는 여성, 이서현 대표를 만났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심리상담센터 대표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이자 운영자, 저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어요.

A. ‘서늘한여름밤’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합니다. 낮에는 에브리마인드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심리상담기획자이고, 저녁에는 그림일기를 그리는 작가고요.


Q. 딴짓2호가 ‘야망녀’로 서밤님을 소개했는데, 야망녀라는 별칭에 공감하시나요? 어떤 야망을 가지고 계신가요?

A. 제가 야망이 있다니 진짜 야망 있는 사람들을 못 보신 것 같아요(웃음). 이상주의자라서 그렇게 보신 게 아닐까요. 에브리마인드라는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는데, 양적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직원들이 만족할 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야망이 더 커요. 그런데 그게 정말 힘든 목표인 것 같아요. 거창하지는 않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거든요. 


Q. 직원들이 만족할 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A. 에브리마인드는 상담 선생님들이 가져가는 이익이 다른 센터에 비해 좀 더 많은 편이에요. 물론 회사가 돈을 많이 가져가면 플랫폼이 강해질 수는 있겠죠. 그러나 직원들이 돈을 더 가져가면 개인들의 힘이 세져요. 플랫폼의 파워를 포기하고 권력을 위임하는 셈이죠. 그러니 직원들이 이곳을 아끼고 함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중요해지게 돼요. 그런 걸 실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회사가 모든 걸 독점하고 노동자는 부품이 되어 돌아가지 않나요? 구성원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면, 그 회사는 망할까, 아니면 어떤 의미 있는 공간이 될까. 그런 게 궁금해요. 그게 저의 실험이에요. 


이서현 대표가 말하는 꿈은 돈을 많이 벌고, 더 많은 사람에게 명성을 얻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규모가 작은 곳에서일지언정 직접 제 손으로 일구는 것. 그 꿈은 어쩌면 더 이루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까지의 성공 서사는 대개 ‘자랑할 수 있고’, ‘물리적으로 거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서현 대표는 사회적 인정보다 내 안에서의 만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 보였다. 처음부터 그는 이런 일터를 꿈꿨던 걸까? 그는 어떤 일들을 해왔을까?


Q. 『마음의 구석』을 읽다보니 병원에서 100일 만에 퇴사하신 이야기가 나오던데요.


A. 대학원에서 임상심리를 전공했고, 임상심리 전문가가 되려고 병원에서 수련을 받다가 100일 만에 때려치웠어요. 병원 내 군대 문화가 심하거든요. 전화번호부를 뽑아서 파트원들한테 돌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상급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글씨체라며 바꾸라고 했어요. 합당한 이유가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걸 거부한 이후로 두 번이나 면담에 불려갔어요. 한 사람만 이상했으면 그냥 버텼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또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죠. ‘다른 데 가면 더 심해요’ ‘여기 계신 슈퍼바이저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게 자리잡으신 줄 알아요?’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여기는 제정신으로는 못 버티는 곳이구나 싶더라고요.


Q. 잘 퇴사하셨네요. 그런데 퇴사가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큽니다. 왜 퇴사 열풍이 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이런 사회에서 지금까지 버텨온 게 용하죠 사실. 예전에는 회사에서 버티면 미래를 보장해줬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안 보장해주면서 희생을 원하잖아요. 그러니 퇴사 열풍이 불지 않을까요.


Q. 퇴사하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퇴사할 배짱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라고들 말하잖아요. 지옥에서 악마로 사는 것과 전쟁터에서 포로로 사는 것,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단언하기 어렵죠.


그러나 매달 꽂히는 월급이 아쉬워 선뜻 사직서를 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서현 대표는 어떻게 통장을 채우고 있을지 궁금했다. 


Q. 실례가 아니라면 수익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A. 주로 에브리마인드 사업에서 수입을 얻어요. 팟캐스트도 하고 책도 내지만, 콘텐츠 사업은 재미로 하는 거예요. 최근에 그림일기로 더는 책을 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있는 일을 단지 재미로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도 내 정체성이에요. 그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창작을 계속하고 싶은데, 창작이 재밌고 즐거워야 그럴 수 있는데 수익이 되면 그게 어렵거든요. 그림일기로 수익 내기 위해 스트레스 받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늘한여름밤’ 그림일기를 애독하는 사람으로서, 가끔 인터넷에서 일부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공격성 댓글을 쓸 때면 화가 나곤 했다. 최근에는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일기를 비판하며 ‘그런 사람에겐 몽둥이가 약’이라는 식의 글도 본 적이 있었다. 대표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Q. 그림일기에 페미니스트의 삶도 보입니다. 인터넷에서 일부 사람들이 대표님의 그림일기에 대해 모욕적인 글을 쓰기도 했던 걸로 아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A. 두 가지, 법적대응과 분노죠. 이런 일을 겪으면 피로가 쌓이고 두렵기도 해요. 얼굴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쪼그라드는 일이죠. 그래서 여성창작자 모임을 만들었어요. 앞으로 이런 일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우리가 서로 지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만든 지 1년 정도 됐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돼요. 나만 악성댓글에 상처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거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더라고요.

 

Q. 그런 저열한 공격에 다시 공격적으로 대응할 때면 존엄성이 훼손된다고 느끼지는 않나요.

A.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내 존엄이 훼손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죠. 머리끄덩이 잡고 싸운다고 해서 내가 덜 우아한 사람이 되나요? 싸워야겠다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 회사원이든 프리랜서든 제 자리를 지키기가 힘이 드는데, 왜 그럴까요?

A. 상담심리 분야는 여초 업계라, 여자라서 불편했던 적은 다른 업계에 비해 적어요. 여자가 나이 들어서 일하기 힘든 이유는 우리 모두 아는 답 아닌가요(웃음). 가정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사라졌다고 표현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가사를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죠. 사회에서 돈을 버는 일만 진짜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거. 결정적으로 40대 이상의 여성들이 갈 만한 좋은 자리가 없는 게 문제예요. 상담 분야 같은 여초 집단 내에서도 장급은 남자가 하고 실무자급은 여자가 많아요. 승진해야 하는데 40대 이상부터는 경력이 쌓여도 처우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요.


Q. 마지막으로 딴짓매거진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자기 ‘곤조’(근성이라는 뜻의 일본어)대로 사세요. 2030 여자들이 어떤 결정을 하면, “넌 어려서 잘 몰라서 그래” 아니면 “네가 충분히 경험하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자신이 주관적으로 지각하는 세계를 믿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글 / 딴짓 1호 박초롱

딴짓매거진 시즌 2/1호 (12호) 발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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